제가 사는 캘리는 이번 겨울에 비가 정말 엄.청.나.게. 많이 왔어요. 5년 가뭄이 다 해갈될 정도라니 정말 엄청난 양의 비가 온 거죠. 비가 오면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댐이 넘치고 강이 넘쳐서 대피령이 떨어지고, 밤새 비 온 뒤에 나가보면 아름드리 나무도 픽 쓰러져 있고 그래요.
어제도 밤새 비가 온 모양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온 세상이 다 젖어 있는데 마침 푸른 하늘에 해가 반짝 나니까 온 천지가 다 반짝반짝 너무 예쁘네요. 홍수 때문에 힘드신 분들 많을텐데 그래도 이 반짝이는 아침이 위로가 좀 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올해가 결혼한 지 9년이 되는 해인데 얼마 전에 늦은 결혼 선물을 받았어요. ^^
100% 손으로 만든 퀼트 이불하고 또 역시 100% 손으로 만든 한과예요. 근사하죠. ^^
엄마 친구분 중에 별명이 '호랑 할멈'이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제가 결혼할 때 일본에 계셔서 챙기지 못하셨다고 이제 보내주셨어요. 워낙 손재주가 좋고 살림이 좋아서 거의 모든 것이 DIY인 분이신데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요즘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휠체어를 타셔야 한다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만들어 보내주신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귀한 선물이 또 있을까요.
저도 뭔가를 보내드리고 싶어서 뭐가 좋을까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결국 내린 결론은 이불. - -; 휠체어 타시니까 무릎덮개가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따뜻하고 자그마한 아기 이불을 하나 사서 거기에 맞는 커버를 만들었어요. 겨울이 더 지나가기 전에 얼른 만들어 보내드리려구요.
옷감을 늘 세컨 핸드 가게에서만 사다가 정말 오랜만에 조앤에 갔는데... 우와아~~~ 그야말로 눈이 돌아가더라구요. 나의 디즈니랜드가 여기였구나 하면서요. ㅎㅎㅎ 어쩌면 그렇게 예쁜 옷감들이 많은지... 이건 이거 만들어 누구 주면 좋겠고 저건 저거 만들어 누구 주면 좋겠고... 행복한 상상을 마음껏 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제가 옷감을 고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색이 너무 화려하면 금방 질려서 안되고, 무늬가 너무 규칙적이면 또 금방 지루해질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은은한 색은 기분이 쳐질 것 같고, 그러니 산뜻하면서 눈에 부담스럽지 않은 그런 무늬를 골라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리고 재질도 손질하기 편하고 촉감도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걸로 찾았구요. 그렇게 심사숙고 끝에 고른 옷감이에요. 예쁜가요?
왼쪽은 사진에는 잘 안 보이지만 은은한 미색 바탕에 노란색 무늬와 조금 진하게 보이는 꽃은 금박이 살짝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오른쪽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바탕에 인도풍의 정교한 꽃무늬가 덩굴과 함께 배치되어 있고 자세히 보면 아주 가느다란 금색 줄이 여기저기 테두리에, 덩굴에 많이 들어 있어서 제법 화려해요. 꽃밭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하는 생각에 골랐습니다.

이불을 넣어 봤어요. 이렇게 되네요. 반으로 접은 건데 제가 의자에 앉아서 덮어 보니까 발등부터 겨드랑이까지 덮을 수 있는 길이예요. 윗부분은 접어서 내리고 그 사이에 손을 넣어 따뜻하게 할 수도 있어요. 이 커버는 IKEA 듀베 커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요. 이불을 넣고 빼는 부분을 바로 아래 같이 처리를 했어요.
짧은 면 한쪽을 두 번 말아 접고 박아서 입술을 만들었어요. 그 폭의 대략 3/5 정도 되는 부분을 열어 놓고 나머지는 다 박았구요. 그 열린 입술에 똑딱 단추를 달아서 닫을 수 있게 했습니다. 써보니까 편하더라구요. 똑딱 단추는 열고 닫기 편하시라고 지름이 3/4 인치 정도 되는 큼직한 걸 달았어요. 노안에 손끝도 무딘데 이런 거 작으면 짜증나잖아요. ^^;

맨 아래는 이불, 그리고 이불 커버 두 개. 커버는 아무래도 프린트 냄새가 나서 한번 살짝 빨아서 다렸어요. 새 옷감의 촉감은 없어져서 아쉽지만 새 옷감에 있는 공장 주름도 없애고 냄새 나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요.

이불이 담겨 온 가방에 저렇게 차곡차곡 접어 넣었고 감사 카드도 하나 써 넣었어요. 그리고 입 궁금하실 때 드시라고 단것도 조금 넣었구요. 이불 받고 이불 보내는 게 좀 웃기긴 한데 선물 받고 너무나 행복했던 제 기분을 그대로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에요. 너무 예뻐서 엄마것도 하나 만들어 드릴까 했더니 "얘, 난 아직은 필요없다." ^^;;; 아니.. 엄마.. 휠체어 타시라는 뜻이 아니예요. ㅎ
2월 말이니 이제 봄이 곧 오겠죠. 그라운드 호크가 자기 그림자를 봐서 올 겨울은 조금 길 거라고 하긴 하지만요. 우리 남은 겨울 알차게 즐기고 새로 올 봄도 기쁘게 맞이해요. ^^